지은이 하노 벡, 우르반 바허, 마르코 헤르만
옮김이 강영욱
1부 돈의 발명 인플레이션이 시작되다
2장 돈의 파괴,새로운 시대가 열리다
1. 꿈틀거리는 인플레이션
-위조지폐를 유포하는 정권
1942년부터 1945년까지 나치 정부는 영국의 경제를 파괴하려 위조지폐 900만장을 작센하우젠 강제수용소에서 인쇄하였다.
그러나 영국 정보국에서 이 작전을 눈치채 실패.
18세기 영국은 프랑스혁명을 진정시키기 위해 대량의 위조지폐를 모스크바, 런던, 비엔나로 이송하였다.
또한 영국은 제 2차 세계대전에서도 독일 경제를 붕괴시키려 위조지폐 발행 계획을 세웠으나 계획은 무마되었다.
이렇듯 예전부터 한 나라의 경제를 붕괴시키기 위하여 강제 인플레이션을 일으키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통화를 파괴시킬 때 주도 면밀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실패하였다.
이들이 어떤 일을 벌여 왔는지 면밀히 알아보도록 하자.
-역사상 최초의 화폐 가치 하락
공식적으로 확인된 기록에 의하면 최초의 화폐 가치 하락은 2세기 로마 제국에서 발생했다.
군인 황제와 통치자들은 시중에 유통되는 금속 동전의 가치를 단계적으로 하락시켰다.
이들은 구리를 섞어 동전을 주조하고 귀금속 함량을 줄임으로써 화폐유통량을 증가시켰으나 화폐의 구매력은 감소했다.
결국 3세기 로마제국의 정치와 경제는 대혼란에 빠졌고, 인플레이션은 그칠줄 모르고 치솟으며 주변국들은 로마의 화폐를 받기 거절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이에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파탄난 로마 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하여 모든 재화에 최고가를 적용하고(현재로보면 쌀 가격 안정화를 위하여 1조원을 쓴 우리 정부가 하는 행동이랑 비슷한건가 생각되기도 싶다) 최고가 규정을 위반하거나 물건을 움켜쥐고 있는 사람에게는 사형을 처한다는 법을 마련했으며, 다음으로는 물가 상승을 법으로 억제시키려 하였다. 하지만 이 2가지 방법은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황제 이후 수천년간 심지어 지금까지도 이러한 방법을 써서 인플레이션을 막으려 하지만 인플레이션은 마치 거대한 강물의 흐름과 같아서 우리가 하는 일은 중단시키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조금 트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수천년간의 인플레이션 억제책에서 한가기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면 최고가 규정을 도입한 국각의 절대 투자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결국 최고가 규정법을 시행했다는 것은 인플레이션 방어에 실패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2, 검은 죽믕과 유럽 최초의 인플레이션
-전쟁보다 무서운 '쉰더링에'
1347년 유럽은 흑사병이 퍼지면서 농노제와 봉건제가 해체되었다.
대지주가 소유한 농지를 경작할 노동력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화폐 가치 또한 흑사병과 함계 사라져갔다.
소비자가 흑사병으로 사망하여 재화에 대한 소비력이 감소했다. 경제학자들은 이때를 디플레이션 시기라고 말한다.
다행히 흑사병 1차 쇼크이후 물가가 상승하기 시작했는데, 이유는 사람은 죽어도 동전을 죽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기 되었다. 그리고 흑사병 도중에 정부가 코로나 지원처럼 양적완화를 실시했기 때문이다.
결국 흑사병 1차 쇼크 이후 연 인플레이션 6%대에 조금 못 미쳤으나 이후 후폭풍에 비하면 온건한 편이었다.
흑사병 말고도 15세기 중반 합스부르크 왕가에서 왕위 계승을 두고 권력 다툼이 일어났다.
권련 다툼을 하는데 돈이 필요했고 이에 통치자들은 '뮌츠레갈'을 판매하였다.
'뮌츠레갈'이란 직역하면 동전진열장인데 그 당시에는 한 통치자가 독점적으로 동전을 유통시키고 여기서 얻을 수 있는 수익을 착복할수있는 권한을 일컬었다. 단순 동전주조 차익과는 다르고 좀더 지능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이었지만 결국에는 '뮌츠레갈'을 사간 사람들이
권한을 악용하고 동전의 은함량을 줄이고 구리와 납함량을 늘렸다. 이렇게 탄생된 동전이 '쉰더링에' 동전이다.
알다시피 화폐 고유가치가 떨어지며 인플레이션이 일어났고 이를 종식시키려 처음 '뮌츠레갈'을 판 통치자는 동전주조권을 비엔나동전주조연합이라는 곳에 팔면서 이를 종식 시켰다.
쉰더링에 시대는 유럽 최초의 인플레이션이 발생한 시기이다. 물론 흑사병 사건도 있지만 이때는 한 시대를 뒤흔들 만큼의 영향력은 발생하지 않았었다.
이제 비슷한 시기 유럽 남부로 넘어가보자.
-"동전에서 은을 모조리 빼버려라!"
16세기 스페인 물가는 매년 1.5%씩 상승했다. 온건한 인플레이션 처럼 보이지만 16세기 말이 되었을땐 물가가 4배로 뛰어올랐다.
인플레이션의 원인은 스페인의 식민지 였던 페루와 멕시코에서 들어온 금과 은 때문이었다.
당시 경제는 '귀금속 보유량이 많을수록 국가가 부유하다'라는 중상주의가 지배하고 있었다.
하지만 귀금속을 다량으로 유입하고 소유한 자들이 부를 축적할 수 있다는 방식이 인플레이션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몰랐다(결국 화폐 유통량이 증가했으니).
이 인플레이션은 '쉰더링에'의 경우와는 달랐다. 과잉 수요나 통화 상태의 악화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지불수단인 화폐유통량이 과도하게 증가해서 생긴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 스페인 왕국의 황제 펠리페 3세는 시중에 유통되는 동전을 주조할때 은을 아예 빼버리는 식의 방법으로 사태를 수습했다.
이에따라 동전의 액면가치가 동전을 만드는 재료와 동전을 주조하는 가치보다 높아졌다.
그 결과 해외에서 동전을 주조하여 스페인으로 수입하고 해외의 스페인 동전 소유자들을 통해 저질 동전을 양질의 금화와 은화로 교환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결국 스페인은 저질 구리 동전이 넘쳐나게 되었고, 금화와 은화는 해외로 유출되어 가치가 계속 올라갔다.
-전쟁이 양산한 저질 동전
17세기 초반 독일에서도 유사한일이 벌어졌다.
당시에는 저울 양쪽에 동전을 놓고 무겁고 품질이좋은(귀금속 함량이 좋은) 동전을 추려내고, 그렇지 못하는 동전에는 납, 구리, 주석을 섞던 관행이 있었고, 이를 키퍼 운트 비퍼 (Kipper und Wipper)라 불렀다.
통치자들은 전쟁준비자금이 부족해지자 이 방법을 악용하였다.
동전에서 은 함량을 줄이고 차익을 몰래 챙기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에 따라 은의 가치는 점점 높아졌고 결과적으로 은값이 동전 한 개의 가치보다 높아졌다.
사람들은 이에 동전을 녹여 은을 추출하고 남은것으로 새로운 저질 동전을 주조하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앞서 봤듯이 화폐가치가 떨어지고 신뢰를 잃으면서 경제를 파탄으로 몰고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