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샀다.
책에서 일기를 블로그에 쓴다는 문장을 보았다. 그로부터 시작된 인연이 곧 동업자로 발전하게 되는 서사가 신기하고 동질감을 느꼇다.
그래서 나도 한번 나의 일상을 재미삼아 블로그에 써보는 것이 어떨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금 쓰는 일기처럼 꼬박꼬박 강박증을 가지는 것처럼이 아니라, 마치 오늘 내가 오랜만에 홍제천을 걸으면서 가졌던 생각처럼 일기에 쓰기는 그렇지만, 쓰지 않으면 사라져버릴, 기억과 감정의 단편을 가끔식 저장해두는 그러한 용도로 쓸 생각이다.
홍제천을 해가 떠 있는 시간에 특별한 목적 없이 방문한 것은 정말 오랜만이다. 아마도 몇년만이겠지.
오랜만에 재회하는 홍제천은 생각보다 나에게 긍정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면서 새로운 생명이 태동될 시기이지만, 서울 한복판, 시멘트와 우레탄 포장도로에 둘러 쌓이고, 출처를 모르는 화확약품의 거품, 썩어가는 물냄새, 강가 옆으로 겨울 지내느라 죽어버린 갈대들, 그 어느 하나도 새로운 시작을 알리지 못할것 같았다.
의문을 품었다. 이러한 환경에도 사람이 많았다는게 궁금했다. 자연이라고 할만 곳이 여기뿐이라서 많은 것인가. 아니면 그저 신호등 없이 길게 뻗은 인도가 여기뿐이라서 오는 것인가. 의례적으로 관습적으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물가가 있는 곳으로 오면 뭔가 주중 내내 지내왔던 현실과는 잠시나마 헤어질 수 있다는 착각에 오는 것인가.
여러가지 생각이 들며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을 살피고 목적을 추측했다. 운동을 하러 오는 사람들, 개를 산책시키러 오는 사람들, 그저 가는 길의 한 부분인 사람들, 연인과 손잡으며 시간을 느끼는 사람들, 하지만 나처럼 순수하게 사색을 하고 곧곧에서 느껴지는 냄새를 맡으려고 온 사람은 적어도 내가 아는 한 보지 못했다.
순간 아쉬웠다. 이대로만 간다면 지금도 그렇지만 더욱더 자연이라고 불릴만한 장소, 공간이 내가 편하게 갈 수 있는 동선내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하고선 말이다. 이러한 일련의 생각을 가지며 걷고 있다가 아직 만개하지 못하고 다소 앙상하다고 말할 수 있는 강가 옆에 있는 유일한 벚꽃나무를 찍고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멀리서 보았을때는 말했다시피 앙상했다. 그래서 생각했다. 그렇게 예뻐보이지 않는데 왜 유난떨고 사진을 찍는 것인지. 그나마 피고 있는 벚꽃의 꽃봉오리 조차도 봄이 다가온다고 자신만만하고 당당하게 알리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몇 천년, 몇 만년을 같은 루틴을 보내왔겠지만 겨우 500년도 안되는 인간의 환경 파괴속에서 이렇게 변할 수 있는 건가.
일련의 생각을 계속해서 거듭하고 확장하며 포방터 시장을 지나서 계속 걷고 있을때 쯤이었다.
아직도 계곡의 물은 깨끗하다고 할 수 없었고, 썩은 물의 냄새는 옅어졌지만 의식하면 여전히 불쾌하게 하는 정도 향이 맴돌고 있었지만 그 옆을 정말 쾌할하게 뛰어다니며 놀고 있는 아이들과 그것을 지켜보는 부모가 보였다.
뭔가 안쓰러웠다. 진짜 깨끗한 자연은 작정하고 차를 타고 멀리 나가서 밖에 향유하지 못하는 지금 세대들, 그리고 점점 척박해질 홍제천과 같이 자라날 새싹들이 안타까웠다.
그리고선 막다른 길에 다다라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포방터 시장을 지나면 낡은 주택이라 해야할지, 그냥 가옥이라 해야할지, 그냥 낡은 집들이 빽빽히 들어서 있다.
올때는 몰랐는데, U턴을 하며 집들 가까이에서 걷게 되자, 익숙한 향이 느껴졌다.
무슨 냄새라고 특정하지는 못하지만, 아마도 오래된 나무에서 나는 썩은듯 만듯, 곰팡내인듯 아닌듯, 습한 나무냄새 였다.
기억을 상기시킨 결과 주로 시골할머니 집에서 나던 냄새였다. 정말 시골집에 안 간지 샐 수 도 없을 것 같은데, 순간 어렸을 적 시골 집에서 키우던 백구까지 생각이 났다.
그렇게 걸어서 오고 있는데, 이전 보았던 그 벚꽃나무를 보게 되었다. 나는 우측 보행을 굉장히 중요시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번에는 벚꽃나무를 바로 옆에서 보게되었다. 벚꽃나무만이 나의 시야에 가득채워졌고, 왜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는지 단박에 이해가 되었다.
나무가 나에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 주마간산으로 보지 말고 자세히 보라고, 그러면 아직도 세상에 좋고, 아름다운 것이 많을거라고.
생각보다 간단하게 쓸려 그랬는데, 길어진 것 같다. 아직도 쓸 것이 많이 남아있긴한데 오늘은 그냥 여기서 마무리 짓고 나머지는 개인 일기장에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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